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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여휴로 오세요

여성-공간
학내 여학생 휴게실의 역사

​편집자 망고🥭

지도 최상단에 W 로고와 함께 여학생 휴게실 어딨니? 라는 문구가 있다. 최하단 우측에는 Find my space? Upgrade my space! 라는 문구가 있다. 지도는 각 여학생 휴게실이 위치한 곳을 W 로고로 표현하고, 주황색과 초록색 선으로 길목을 간단하게 표현했다. 표시된 여학생 휴게실은 아래쪽부터 차례대로 제2공학관 1층, 이과대 1층, 중도 6층, 학관 3층, 의대 지하, 간호대 지하, 문대 지하, 사회대 1층, 논지당, 상대별관 지하. 총 10곳이다.

사진1. 2000년대(추정) 신촌캠퍼스 여학생 휴게실 지도.

출처: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카이브 여기모아>

백양로를 거쳐가는 누구 할 것 없이 현대인의 바쁨을 절실히 드러내는 연세대학교에서, ‘휴식’ 단 하나만을 쫓아 캠퍼스를 찬찬히 뜯어본 적이 있는가? 연세대학교 공식 홈페이지의 시설안내에 따르면 학내에는 총 11곳(논지당, 학생회관, 중앙도서관, 그 외 7개 단과대학에 1~2개씩 위치)의 여학생 휴게실이 존재한다. 이들은 놀랍게도 연세대학교 초대 총여학생회의 출범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우리 학교의 일부로 함께한 역사다. 그 중에서도 '논지당'은 연세대학교 여성공간의 첫 걸음이자, 여학생 휴게실의 원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언더우드관을 지나 연희관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 떳떳이 서서 여성주의를 탐구하는 학생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곳은 총여학생회를 비롯한 학내 여성단체들, 그리고 억압과 위협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탐색해온 여학생들에게 오랫동안 휴식과 가르침, 연대정신을 제공해온 역사 그 자체다.

 

“1955년 11월 개관한 논지당은 여학생 상호간의 친목도모와 휴식을 위해 마련한 여학생관이다.

학생회관보다 먼저 지어진 여학생관의 논지당이 라는 이름은 당시 백남준 총장이 붙인 것인데, 앞뜰에 있는 두 그루의 거목의 이름을 따 The Syxamore Hall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 뒤 매년 여학생의 수가 늘어나자 1963년 9월 중축하여 기예실습실과 휴게실을 두었다. 현재도 여학생 휴게실로 사용되고 있다.

(연세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홈페이지를 통해 드러난 논지당의 기획의도는 이 시설이 학내 여성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상호 교류와 집합, 그리고 안전한 휴식을 위한 온전하고도 이상적인 ‘여성주의적 공간’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논지당의 설립은 이후 여학생 전담 지도 기구인 여학생처의 설립으로, 그리고 역대 총여학생회의 활동을 돕고 자문하는 역할을 지속해온 성평등센터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학내 여성인권과 여성자치공간을 둘러싼 노력의 중심축으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1977년 9월에는 학생회관에 여학생 휴게실이 마련되었고, 이후 각 단과대 건물에서 그 필요성이 대두되어 여학생 휴게실이 차례로 생겨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주1) 이는 학교가 차츰 ‘여성공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그 필요를 수용하며, 나아가 최초로 (연세-)대학에 남녀공학 제도가 도입된 1946년 이후 여성 구성원들이 연세대학교라는 공간에 진정으로 합류되어온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1) ​이곳에서는 2019년 숭실대 인권위원회장의 발언을 차용하여 그 근본적인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간결히 요약하려 한다; “동아리방과 과방 등 교내 학생공간에서 성폭력 사건이 꾸준히 발생하는 상황에서 여학생 휴게실은 교내 성폭력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이므로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중요성을 가진다.”(주2)

 

이 공간들에 묻어나는 피와 땀의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낡은 증거는 2001년 5월 14일, 제13대 총여학생회 <별 수 있/다!>의 일원들이 ‘학내 여학생 휴게실’만을 의제로 삼아 논의하기 위해 결성한 모임, '여휴만만'의 존재다. '여휴만만'이 결성된 지 약 1년 후에 발행된 <지하생활자의 수기>라는 자료집은, 2002년 당시 연세대를 비롯한 공학 대학교들의 여학생 휴게실에 대한 정보부터 그 공간들이 겪었던 고초, 여학생 휴게실이 ‘여휴만만’의 각 구성원들에게 가지는 개인적인 의미와 대학이라는 "사실은 무척이나 남성중심적이며, 동시에 여성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 속에서 가지는 의미까지를 담은 정보의 보고다.(주3)

주3) <지하생활자의 수기> 전문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디. 앞으로 여휴에 바라는 게 있다면요. 우당. 여휴에 따뜻한 온기가 있었으면 해요. 정말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썰렁함.. 휴게실이라면 우선 아늑해야 하잖아요. 팔. 여휴 안에도 여성정보지나 책자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참 그리고 컴퓨터도요. 콰이. 참 상대 같은 경우에 모든 반방에 컴퓨터가 있더라구요. 팔. 여휴 내에서 여성 영화 같은 거 했으면 좋 겠어요. 콰이. 저번에 여성제 기간에 문대 여성주의모임 모반에서 한번 했었는데..(땀 흘리는 이모티콘) 홍보가 제대로 안 되었나봐요(눈웃음 이모티콘) 팔척. 다음부턴 여휴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드나들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당. 마음놓고 쉴 수 있는 익숙한 공간이 되야 할텐데......

사진2. <지하생활자의 수기> 중 ‘여휴만만’ 내부 인터뷰 출처: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카이브 여기모아>

여기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들이 ‘단순한 휴식’에서 나아가, 확장된 의미를 가진 공간으로 여학생 휴게실을 재구성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논지당의 설립 목적처럼, '여휴만만' 또한 여학생 휴게실이 연대, 안전, 교류, 그리고 공동체의 힘을 비롯한 다양한 가치로 구성된 여성주의적인 공간이었으면 했다.

그림으로 된 연세대학교 지도 위에 각 여성제 부스의 위치와 행사 제목, 날짜가 적혀 있다. 아래쪽에서부터 차례대로, 27일 100주년기념관 앞. 6시부터. 여우야 나오너라, 달맞이가자. 25일에서 27일 중도 앞 민주광장. 왁자지Girl. 9월 26일 대강당 앞. 12시에서 2시. 연세야, 이제 나를 응원해 봐. 25일에서 27일 백양로. 나는 어떤 타입의 풍류여인일까? 24일에서 25일, 외솔관 지하 여학생휴게실. 11시에서 6시. 여휴야, 너 거기 있었니? 25일에서 26일, 노천극장연습실. 4시에서 6시. 바람소녀! 춤바람나다! 24일에서 25일 6시부터. 제2인문관(위당관) 1309호. 바람소녀, 극장에 가다.

사진3. 제4회 여성제 <풍류여인> 홍보물

출처: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카이브 여기모아>

실제로 2001년에는 연세대학교 제4회 여성제, <풍류여인>과 결합하여 여휴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행사를 했는데, 여기에는 무려 '무료 탐폰 배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여학생 휴게실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하려 끝없는 노력을 기울인 증거가, 문화제-여성제와 결합된 행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2007년에 결성된 여학생 휴게실 환경 개선 운동팀 [아래人목] 또한 2007 대동제에서 잔디밭에 펼쳐진 '오픈 여휴'를 만들고, 영화제를 개최하고, 공모 사진전을 여는 등 여휴의 인지도를 높이고 관심을 끌기 위한 활동을 했다. 이들에게 여휴는 바야흐로 문화였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휴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여성-문화와 가치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더불어, 모든 여성주의가 그렇듯이 학내 공간을 거니는 여성주의 또한 저항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내 11곳의 여학생 휴게실을 여성공간 자체로 완성시키는 것 역시 저항의 역사다. 언제나 '열악한 상황'에서 존재해온 여학생 휴게실을 학생처와 논의를 통해 공간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는 외면 속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도 많았으며(주4), 몇몇 여학생 휴게실은 건물 재정비 과정에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적도 있다.(주5)

 

현재는 여학생 휴게실의 존재에 대한 '명백한' 저항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핵심적인 이유는 '왜 여학생 휴게실은 있는데 남학생 휴게실은 없는가?' 하는 끈기있는 질문에 학교가 무엇보다도 명확한 답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없다면 만들어 주마!’ 현재 몇몇 여학생 휴게실은 남학생 휴게실과 나란히 위치해 있는데, 이는 공간 분리의 의미를 흐리는 것뿐이 아니라 지금의 여학생 휴게실이 문화와 가치의 역사적 맥락에서 탈락하고 '기계적 성별분리'의 공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2010년 [2010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연세자치단위연대] <굿바이 거짓평화;성평등 자치규약 자료집>의 한 문단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이와 동시에 학내에서 과거에 페미니즘이 ‘제도화’시켰던 많은 것들의 의미는 너무나 빠르게 퇴색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2007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총여학생회 폐지’를 가장 큰 이슈로 만들며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개그프로그램을 인용하며 ‘남학우 휴게실 신설’을 공약으로 띄웠던 것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한 시도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실제로 지금의 대학사회에서는 과거에 총여학생회가, 여학우 휴게실이 만들어졌던 맥락이 거의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굿바이 거짓평화 중)(주6) (끝)

주6) ​2010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연세자치단위연대, 굿바이 거짓평화;성평등 자치규약 자료집(2010), 출처:<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카이브 여기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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