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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10박 11일을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

편집자 야자수🌴

농촌연대활동, 농민여성과 연대하기

농활. 농촌연대활동의 줄임말이다. 농촌봉사활동이 아니다. 그래서 농활은 연대활동(농민들과 소통, 농경지 작업활동, 마을잔치)뿐만 아니라 교양활동(동시대 사회의제 발제 및 토론)도 진행한다. 농촌연대활동이 시작된 것은 1970년 즈음으로, 학생운동의 흐름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농민들의 삶을 대학생들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로, 단순히 논밭 경작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저녁이 되면 농촌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농민들의 이야기도 듣고, 직접 교양자료집을 준비하여 공부한 농사태(주1), ‘기후위기와 농사’와 같은 시대상을 반영한 의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양 시간을 갖는다.

 

현재 연세대학교는 2013년부터 전라북도 익산으로 농활을 가고 있다. 이전까지는 논산이었다고 한다. 농활을 기획하는 운영단위는 중앙농활추진위원회(이하 농추위)로, 중앙3주체인 농주체, 여성주체, 선전단장으로 이루어져있다. 농주체는 농활의 총 담당자이고, 여성주체는 폭력예방교육, 여성주의 교양을 담당한다. 선전단장은 코로나19 이전에 선전전을 담당하였으나 코로나 이후로는 활동이 중단되었다. 중앙3주체는 농활의 기조를 정하고, 기획운영을 하며, 농민회와 소통을 한다.(주2)

주2) 연세편집위원회 제 135호, 농활

 

1994년도 연세대학교 이과대 여학생회는 여름농촌활동 자료집 <여성농민>(주3)을 발간하며 당시의 여름 농활 여성농민반 활동의의와 목표를 1)여학생회와 여성농민과의 연대 강화, 2) 김영삼 정권과 미국이 합의한 수입개방문제를 논의하고 국회비준저지를 위한 조직력 강화, 3)여성농민이 처한 가정폭력의 심각성 알기, 4) 농촌 탁아현실 합의 후 탁아소 건설 대안 마련 으로 언급한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농사작업과 더불어 농민여성을 대상으로 뜸뜨기 강좌, 민요 노래자랑, 풍물 배우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외의 시간에는 집집마다 방문하여 농민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래 사진은 프로그램별 활동안내를 하고 있다. 호별 방문을 할때 유의할 점을 통해 학생들이 농민여성에게 다가가기 위해 섬세하게 노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보통 가가호호 방문하여 이야기를 할때 아버님들과만 이야기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목적의식적으로 여성농민들과 같이 이야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달하려는 내용을 준비 못했거나 용기가 부족하면 저녁 시간 같은 경우 어머님들과 텔레비젼만 보다가 오는 경우가 있다. 여성농민들이 대원들과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건 많지 않다. 끈기 있게 접근하고 말문을 트는 용기가 필요하다. (14쪽)

여성농민이라는 작은 문구 아래 글이 빼곡하게 적힌 페이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호별방문시에는 그날 작업한 여성농민의 집을 찾아가서 분반활동에 참여 하게 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마름모. 여성농민과의 긴밀한 결합을 위하여 개별작업(새참준비 등)도 같이하면 좋다. 활동방법. 슬래시. 겁먹지 말고 먼저 대화를 시작하자. 가족상황. 농사규모, 살아온 이야기 등 아무 이야기나 좋을것이다. 나. 호별방문. 분반활동시간과 작업시간, 기타 일정을 제외하고는 호별방문이 계속 되어야 하는 만큼 치 밀하고 계획적인 호별방문이 중요하다. 유의할 점. 마름모. 보통 가가호호 방문하여 이야기를 할때 아버님들과만 이야기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목적의식적으로 여성농민들과 같이 이야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름모. 전달하려는 내용을 준비못했거나 용기가 부족하면 저녁 시간 같은 경우 어머님들과 텔레 비젼만 보다가 오는 경우가 있다. 여성농민들이 대원들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많지 않다. 끈기있게 접근하고 말문을 트는 용기가 필요하다. 활동내용 및 방법. 다. 우천시 활동. 비가 오는 날은 여성농민들이 마실다닐 시간을 갖게 되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사전준비 가 없거나 기동성을 발휘하지 못하여 이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학생들은 자신의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비가 오는 날은 신속하게 어머니들을 모이게 하던가 한두분이라도 모이신 곳을 찾아가서. 비디오를 같이 보거나 자유로운 토론시간을 갖거나 시간의 부족으로 진행되지 못했던 프로그램 진행. 함께 볼만한 비디오를 미리 알아보고 분반원들과 함께 본후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지도 의논해 보고 가기. 주의할 점은 잘못하면 피곤하신 어머니들이 계속 졸음을 참으며 계셔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농활에 볼만한 비디오. 슬래시. 쌀수입개방저지에 관한 비디오. 슬래시. 보육의 사각지대 농촌아이들.

사진1. 농활 여성농민반 활동 안내

출처: 제6대 이과대 여학생회. 농민여성반 여름 농촌활동자료집 <여성농민(1994)>.14쪽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카이브 여기모아>

농활에 여성주체가 생긴 이유?

 

94,98년도에는 농민여성 자체에 집중했다면, 2000년대 이후의 농활 교양학교 자료집에는 농민과 대학생들 사이의 성평등한 관계맺음과 성평등한 농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성평등한 농활과 중앙3주체 중 하나인 여성주체의 등장은 2000년대 초부터 논의된걸로 보인다. 2004년 서울대 농활기간 도중, 농민 한명이 여학생 숙소에 들어와 성추행 저질러 농활대를 철수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농민들이 여학생을 향해 “아가씨”라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철수 했다는 소식만 전해져, 대학생들을 향한 뭇매가 이어졌다. 농촌의 현실도 이해하지 못하는 ‘속좁은’ 대학생이라는 것이다. 이에 총학생회장은 명백한 성추행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가씨라는 발언도 어떤 상황에 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 단어 하나만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주4). 이뿐만 아니라 2008년도 연세대학교에서도 연산면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농추위는 농민회와 가해자 농민에게 정식적인 사과와 농민회 주최의 확실한 성평등 교양 진행, 가해자의 술자리 합석 제한을 요구했고, 이에 농민회와 가해자도 사과하고 응답했다.

 

농활에서는 농민과 대학생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농활대원 사이에서 부딪히는 상황이 빈번하다. 농활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 혹은 성평등하지 않은 상황은 단지 ‘농활’이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니라, 일상속에서 이미 문제적이었던 일들이 서로가 밀도있게 공존하는 10박 11일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드러나게 된다는 점에서 여성주체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주5). 하단은 각 단과대의 여성주체와 중앙 여성주체들이 작성한 <농활여성주체 백서>에서 일상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대응 팁을 인용했다. 성평등한 농활을 위해 ‘교양학교’와 같은 진지한 방식으로만 되는것이 아니라, 때로는 일상 속 ‘천진난만한 대화’도 필요히다. 그 시절 대학생들이 ‘어떤 상황을 문제로 여겼는지’와 ‘그를 위해 해결하기 위한 방책’은 무엇이었는지 그 흔적을 보면,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정말 서로 다른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가려 하는지, 또 그것을 해결하고자 고민을 하는지 반추해볼 수 있다.

 

- 농민들과 대화할 때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연령대가 다른 농민분들과 우리 학생들의 대화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업하면서 대화가 없다면, 그건 농활이 아니겠죠? (...) 무엇보다 대화가 ‘쉬워지는 지름길’은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겠네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듣자. 궁금한 것들을 생각해보자’ 입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이겠죠? (...) 농활기간동안 자신이 맡은 ‘~주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봐도 재미있구요. 농활의 기조에 대한 의견을 나눠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 농활 공간 문제에 관해

성평등 농활의 관점에서 공간문제를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단순히 취침 공간 분리를 비롯한 여남 생활공간의 ‘분리’가 ‘성평등 농활’이나 ‘농활 성폭력 예방’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공간 분리 → 성폭력 예방 → 성평등 농활>이라는 명제가 항상 ‘참’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간’을 넘어서 더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을 채우는 우리의 ‘행위’ 아니겠는가. 농활 공동체 내에서의 충분한 고민의 결과로 하나하나 규율들이 정해지고, 그 규율들에 담긴 뜻이 개개인 농활대원들의 실천 속에서 구체적인 행위로 ‘구현’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편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기계적인’ 생활공간의 분리에 의해 농활대의 일상 자체가 여남으로 쪼개지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남이 농활을 통해 소통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획의 문을 오히려 닫아버릴 수 있다! 물리적인 공간의 힘은 이토록 무섭다;;

- 빨래하기

마을에서 있었던 몇몇 사례를 들어보고 어떻게 빨래를 해야할지 고민해봅시다.

사례1. 농활대원들은 거의 다 남학생이었고, 여학생은 3명이었다. 그 중 07학번 여학우가 모든 학생들의 농활 티, 몸빼, 양말, 속옷을 모두 챙겨다가 매일 빨래를 했다.

사례2. 작업 끝나고 마을회관에 돌아오면 너무 힘들다. 빨랫감을 모두 모아 이장님 혹은 마을 주체 삼촌께 부탁드려 세탁기를 이용한다. 한 시간 후 찾아가면 옷가지는 탈수까지 끝나 있다.

사례3.남학생들의 속옷은 옥상에서 햇볕 받으며 마르고 있는데, 여학생의 속옷은 가방 안에서 잘 썩어가고 있다. 이제 입을 속옷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

 

- 작업분배에서

우리는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농활에 온 것이 아니다. (성별분업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모두 다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이 되어야한다.

성별 분업을 방지하는 방법: 1)작업주체는 그날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몇 명이 필요한지 농민분에게 미리 물어본다. 어떤 자세로 얼마나 근력이 필요한 일인지 자세히 물어본다. 2)농활대원들과 일의 특성을 공유하고 몸이 아픈 사람이나, 각자의 신체조건(큰 키가 필요할때도 있다.)들에 고려하면서 작업을 나눈다. 3) 일 잘하려고 농활하는 것은 아니니까. 일을 할 때도 같이 할 수 있는 방향을 더 많이 찾는다.무거운 것이 있으면 같이 드는 식으로. 4)농민분들이 뭐라고 하실 때에는 “같이 할 수 있어요”처럼 가볍게 넘어가고 직접 보여드린다. 5)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의 기준이 성별이 아닌 개개인의 조건에 맞추어진 것이라는 걸 모두가 공유한다.

 

- 농활대원과 농민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일단 최선의 방법은 미리미리 농민분들과 이야기를 통해 ‘성평등은 무엇이고’ ‘어떤 지점에서 고민해보고 조심해야하는지’ 풀어가며 어느정도 합의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다 이야기 하지 못해도 이런 고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면 “아이고 우리 이런거 조심하기로 했잔하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 물론 주위에 의식있는 사람들이 함께 좋게 좋게 동조하며 잘 풀어나가야 힘이된다. 농민분이 불편하실까봐 무조건 참는 것은 연대활동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리 좋은 해결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분위기 잡지 않아도 사소한 사례를 들거나 천진난만한 질문으로 자연스레 풀어나갈 수 있으므로(물론 이게 정말 힘들다) 대처법을 잘 준비해가면 좋다.(...)

 

- 마을 잔치에서

마을 잔치를 하기 전에 두 번 정도의 논의를 거칩니다. 논의를 하고 나서 이틀 동안 마을 방송으로 또는 마을신문으로 마을 잔치를 홍보하는 과정도 이었네요. (...) 여성주의적인 마을잔치를 하기 위해서는 가사노동이 한 농활대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기, 여성농민과 남성농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야 할 것, 농민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지 말 것(특히, 음식 부분에 있어서 여성농민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마을 잔치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죠) 등등 함꼐 논의해 보아야 합니다.

 

- 열악한 샤워시설에서

(...)  우리는 샤워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요? 몇몇 마을들의 사례를 보고 생각해보도록 해요.

사례1. 마을 농민 분들께서 여학생들은 차가운 물로 샤워하지 말고, 집에서 샤워를 하라고 특별히 샤워 공간을 내어주셨다. 남학생들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연약한 여학생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였다.

사례2. 마을 회관에서는 차가운 물로 씻어야 한다. 그래서 각자 작업이 끝나면 작업을 했던 농민 분의 집에서 샤워를 했다.

사례3. 마을 농민 분께서 여학생들은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며 불편할 수 있으니 집에서 샤워를 하라고 샤워 공간을 내어주셨다. 하지만, 함께 의논하여 생리 중인 여학생과 몸이 아픈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마을 회관에서 샤워를 하기로 하였다.

농활에서는 모두가 함께 생활하는 방법을 알아나가게 됩니다. 또한, 성평등한 농활을 하기 위해서 많이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를 해야 하죠. 샤워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원문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해당 링크로 접속해 24쪽부터 확인하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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