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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공간,
평등하고 안전하려면
어떠한 약속이
필요할까요?

과거/학내 성폭력 자치규약 제작/ 새터 자치 규약 제작

​​편집자 우무🌊

처음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신입생 행사를 하며 내가 가장 먼저 접했던 것은 단과대의 자치규약이었다. 길고, 길고, 길었다. 단과대 대표자와 과 대표자들이 돌아가며 한 꼭지씩 발표를 하는데 40분이 넘게 걸렸다. 솔직히 엉덩이 골이 아려 왔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좋았다. 자치규약은 학벌, 나이, 이성애, 젠더권력, 장애, 출신지역, 민족, 종교 등 모든 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약속이라고 명시적으로 시작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안전장치가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대학 내에서 안전할 수 있는 분명하고 확실한 울타리가 눈앞에 선연히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자치규약은 주체적인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선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것 하나 더. 자치규약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반(反)성폭력 항목이었다.

 

6. 반(反)성폭력

 

1) 성폭력은 ‘개인의 적극적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성적인 성격을 띤 언어적, 정신적, 신체적 행위 및 요구 그리고 성별에 기반한 차별적 행위’를 말합니다.

 

- 위의 요구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 또한 성폭력에 해당합니다.

- 우리 모두는 성폭력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폭력은 이성 혹은 동성에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임을 인지합니다.

- 성폭력은 의도가 없더라도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주의합니다.

- 다양한 상황에서의 발언과 시선, 신체 접촉 등의 행위가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음을 명심합니다.

- ‘술을 마셔서’ 또는 ‘술 취한 학우를 챙기겠다’ 등의 핑계로 성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2) 어떠한 성폭력 사건도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사례)

- 아래 내용은 한정적 열거가 아닌 예시적 열거이며 이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함을 인지합니다.

- 모든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행위 (카카오톡 단체 톡방 등 SNS에서 일어나는 성적대상화,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게시물을 SNS계정에 올리는 행위,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에 의하여 발생하는 성희롱 등)

- 별도의 동의 없이 타인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 편집 유포 소비하는 행위 (타인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는 행위, 화상 수업 상 타인의 캠화면 혹은 SNS상 사진을 캡처하여 무단으로 공유하는 행위 등)

-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을 시도하거나 요구하는 행위 (일방적 스킨십 술에 취해서 계속 기대거나 안는 행위, 술에 취하는 등 상대방이 의사 표현을 명확히 할 수 없을 때의 스킨십, 자고 있는 사람에 대한 스킨십 등)

-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가지고 성폭력 가해를 정당화하는 언어 및 행위 (여성의 옷차림이나 늦은 귀가가 성폭력을 유발한다고 말하는 경우 등)

- 성적 편견에 근거하여 술자리에서 일련의 언행을 기대하거나 강요하는 행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가까이 앉아 술을 따르게 하거나 술을 마시게 하는 경우 등)

- 성적인 의미를 담은 언행을 하거나 타인에게 요구하여 불쾌감을 주는 행위 (성적인 농담을 하거나 성적인 화제를 강요하는 경우, 남학생들을 왜곡된 여성의 모습으로 여장하게 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해서 심사하는 경우 등)

- 상대방의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행위 혹은 성적 대상화를 하는 행위 (상대방의 몸을 오래 훑어보거나 특정 신체부위를 응시하여 상대방에게 성적인 불쾌감을 주는 행위 등)

 

3) 모든 구성원은 성폭력 사건을 진지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대합니다.

- 성폭력 사건의 조사와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의 경험, 기억, 감정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 성폭력 사건의 발생을 인지했을 때 즉각적으로 제재하고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중재가 필요한경우 대표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 아래 서술한 항목들은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주의합니다.

- 성폭력 사건을 희화화하는 경우, 사건 자체를 부정하거나 축소, 은폐하는 경우, 가해자에 대한 평소 인식 등을 근거로 가해자를 옹호하는 경우,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건을 유포하는 경우,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을 돌리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 등

 

4)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구성원은 공동체에 대한 성찰과 고민 그리고 실천을 함께 이어나갑니다.

 

-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사건을 단순히 가해자만의 문제로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고 구성원들의 자기성찰과 공동체의 반성폭력 문화 확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갑니다.

- 공동체는 구성원의 도움 요청에 성실히 응해야 합니다.성폭력 사건의 해결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본인의 피해에 대해 관련 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학생회로 성폭력 사건을 접수할 경우 (학생 공동체 차원의 해결을 원하는 경우) 신고인의 의사를 확인하고 사건 처리를 학생회 (각 과/학부 학생회, 사회과학대학 동아리연합회, 사회과학대학 학생회)등에 요청합니다.

 

1. 사건이 접수될 경우 학생회 차원에서 ‘성폭력 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성평등센터 등 전문 기관의 자문을 받아 문제 상황에 대처합니다.

2. 신고인이 원할 경우 해당 사건을 성평등센터로 이관할 수 있습니다.

- 전문 기관으로의 문의 또는 접수를 원하는 경우

연세대학교 성평등센터: 02-2123-2118 / 연세대학교 인권센터: 02-2123-2116~7- 심리상담을 원하는 경우 연세대학교 심리상담센터: 02-2123-6688(신촌캠퍼스), 032-749-2070(국제캠퍼스)

2021년 사회과학대학 공통자치규약 (주1)

 

자치규약은 매년 인준받은 단과대 운영위원회에서 새로 개정을 하였는데, 내가 속했던 단과대는 이 개정을 위하여 일주일 동안 꼬박 밤을 새가며 회의를 했다. 그리고 2021년까지만 하더라도 단과대 자치규약을 개정하며 가장 중요하게 손꼽히던 항목이 있었다. 바로 반(反)성폭력이었다. 이 항목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전해져 내려오던 내용이었다.

 

그동안 여성주의를 중심으로 학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평등하고 안전할 수 있도록 하는 다층적이고 중첩적인 노력들이 이어졌다. 그 중 대표적인 예시가 반(反)성폭력 자치규약이다. 대학사회 내에서는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 성적인 내용이 포함된 노래인 ‘정력가’를 부른 사건(주2), FM, 음주문화 강요, 성별/학번/나이 권력을 토대로 하는 위계적 문화(주3)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대학 내의 여성주의자들이 조직한 자치단체들은 이런 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반(反)성폭력 자치규약을 제정하기 위하여 운동을 활발히 전개(주4)하였다.

 

1993년, 서울대 신정휴 교수가 가해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 관련 학칙제정’에 대한 필요성을 확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주5). 그러나 해당 운동을 주도해야 하는 학생자치단체, 특히 총여학생회는 1년 단위로 임기가 끝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하였기에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용이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후 1997년, 국민대에서 또다른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자 18개 학교의 여성운동단위가 결합한 ‘학내 성폭력 근절과 여성권 확보를 위한 여성연대회의(이하 여성연대회의)’가 출범하였다.

연세 성폭력 뿌리뽑기 연대회의를 제안합니다 2003년도에 연세 안에는 "연세 성폭력 뿌리뽑기 연대회의(이하 연성뿌연)" 가 구성되어 활동을 벌여나갔습니다. 연성뿌연은 각 단대별로 반성폭력을 고민하는 주체들이 각자의 단위에서 겪는 고민과 활동을 공유하고 만들어가는, 전단대를 포괄하는 활동단위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연성뿌연 활동은 1,2월에 반짝 새터 내규 교양과 홍보 작업 을 진행했을 뿐, 각 단대의 참여율 저조와 관심의 부족으로 인하여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2학기에 있었던 '반성폭력학칙 개정과 개선을 위한 공청회'와 같은 연성뿌연 차원에서 준비되어야 했던 사업(2000년 연성 뿌연 활동을 통해 반성폭력 학칙 제정을 이끌어냈듯이)들을 총여학생회와 몇 몇 단대학생회만이 참여해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성폭력의 문제는 개인이, 혹은 어느 한 단체만이 움직여서는 결코 해결될 수도, 그리고 효과적인 담론화가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입니다. 여전히 성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낮고 끊임없이 희화화되거나 선정적인 문제로서만 다루어지는 현실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변화는 한없이 요원한 일로 그쳐버릴 것입니다. 또한 단대마다 다른 특수한 상황들을 공유하고, 그 상황에 맞는 운동을 펼쳐 나가지 못한다면 반성폭력 운동은 효과적으로 이루지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2004 년 연세 성폭력 뿌리뽑기 연대회의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2000년 "연성뿌연"활동이 첫성폭력 학칙에 있어 학생참여보장을 명시적으로 이끌어낸 성과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만이 아닌 연세 구성원 모두의 참여가 있을 때 성폭력 없는 연세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장활동, 과반•동아리 MT, 각 단과대 별 상황에 맞는 자치 규약의 제정이나 현재 제정되어 있는 첫성폭력 학칙의 실효성 있는 운용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실시 등 연성뿌연을 통해 성폭력의 흐름을 만들어 나
가도록 합시다. 성폭력의 문제는 더 이상 성폭력의 경험이 있는 피해자나 소수의 관심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차에 걸쳐 강조되어왔듯이, 성폭력은 우리가 몸당고 있는 사회의 문화적 차원의 문제이며 이는 곧 생활 영역 곳곳에 침투하여 끈덕지게 문제제기 하지 않으면 변화시킬 수 없음을 의미합니 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단위에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실천에 함께 합시다. 그리고 연성뿌연을 통해, 보다 풍부한 논의들을 만들어 내봅시다. 연성뿌연 준비회의 2004. 1. 12 준비할 것들 -단대별 반성폭력 주체 -새터 내규 교양 & 홍보 -단대별 반성폭력 자치규약

<사진 1> 연세 성폭력 뿌리뽑기 연대회의를 제안합니다 출처: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카이브 여기모아

여성연대회의는 성적 자율권 확보를 전제로 하는(주6) 대중운동과 자치운동의 성격을 가진 반성폭력 자치규약제정운동을 개진하였다. 1997년에서 1998년 사이에 반성폭력 학칙의 가안이 완성되었으며, 연세대는 제12대 총여학생회 ‘로그인’을 중심으로 ‘연세 성폭력 뿌리뽑기 연대회의’를 조직하고 ‘새터 반성폭력 내규’를 2000년 2월 9일에 제정했다. 대학 내 공동체를 위한 성평등 자치규약(새터 반성폭력 내규)은 확대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의 작업(주7)을 거쳤다. 이를 바탕으로 성폭력 자치규약은 보다 명료한 언어로 구체화되었으며, 계속해서 변화하는 여성주의의 논의와 호응했다. 현재 반성폭력 자치규약은 중앙단위 뿐 아니라, 앞서 사례에서 인용하였듯 각 단과대 조직의 자치규약 중 ‘반성폭력’ 항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반성폭력 자치규약운동은 학내 성평등한 문화를 실천하고 현실로 구현하고자 함과 동시에, 학외 상황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었다. 1999년부터 시행된 정부의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과 맞물리며 학교 본부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성폭력 상담소를 개설하였다. 총여학생회는 학교 본부에게 학생을 배제한 피상적인 학칙이 아닌, 학생들의 직접적인 수정안이 녹아든 학생회칙 제정을 요구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세대학교 성폭력 예방 처리에 관한 규정’이 제정 및 공표되었다. 자치규약은 단순히 ‘학내 공간’에만 고착화되어 안전한 울타리를 두르고자 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자치규약제정운동은 캠퍼스 내에서의 문화를 형성하는 자족성을 지닐 뿐 아니라, 규약을 생성하는 과정을 대중에 노출하여 그 뜻을 학외로 확산하고 학외로 조직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주8). 이렇듯 반성폭력 자치규약이 가지는 의미와 그를 실천하려는 운동은 학생조직 내부의 약속을 넘어 사회를 끊임없이 두들기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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