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인권축제
아닙니다,
제 18회 인권축제입니다.
편집자 야자수 🌴
과거 백양로에는 ‘문화제’라는 것이 있었다.
4년 만에 연세대학교 제4회 인권축제 <오늘부터 우리는>이 개최되었다. 혹자는 ‘제4회’라는 명칭만 보고는 짧은 역사를 가진 축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총여학생회 주관으로 개최된 인권을 주제로 한 문화제는 과거 1997년부터 ‘여성제’, ‘반성폭력문화제’, ‘섹슈얼리티 문화제’ 등과 같은 이름으로 백양로 위에 펼쳐져왔다. 인권축제도 여러 문화제 중 하나로, 이전 3회차의 인권축제는 총여학생회 및 학내 인권 단체가 주관하였다는 점에서 1997년부터 총여학생회에서 주관한 각종 문화제와 결을 같이 한다. 문화제를 칭하는 명칭은 다 다르지만, 그 형식은 영화상영 및 GV/참여형 워크숍/강연/전시/ 부스/공연을 유지해 왔다는 점과 그 정신은 여성주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대학 문화제란 학생들이 학생사회에 전하고 싶은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하고 학내 여론을 활성화하고자 기획·운영하는 행사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라카와 동아리 박람회와는 또 다른 성격을 띈다. 총여학생회가 주관한 여성제가 아니더라도, 총학생회 주관의 등록금 촛불문화제, 상경 경영대 학생회 주관의 교육 문화제, 총학생회·총여학생회·장애인권 동아리 게르니카 연합 주관의 장애 인권 문화제, 노수석 열사 추모 문화제 등이 있었다.
2008년 3월에 개최된 등록금 투쟁을 위한 연세대학교 촛불문화제는 백양로 길거리에서 등록금 인상에 대한 부당함을 학생들과 공유하고자 ‘기왓장 깨기 행사’, ‘물풍선 터뜨리기 행사’, ‘OX 퀴즈’를 진행했다. 저녁에는 ‘학생들의 발언과 촛불 의식’이 이뤄지기도 했다. 백양로는 각 단과대에서 대표로 내건 등록금 인상 반대 현수막으로 꽉 차있었다.(주1)
연세대학교의 역사는 곧잘 쌍팔년도 민주화운동으로만 수렴되곤 한다. 물론 그분들도 너무 중요한 분들이지만, 민주화와 현재 사이를 잘 지탱해준 학생들의 역사도 눈여겨볼만하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어떤 작당모의를 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현재 학교생활을 더 재밌게 다닐 수 있는 학생사회에 대한 상상력이 생기지 않을까.
과거의 여성제, 어떤 행사를 했을까?
그렇다면 과거의 총여학생회는 학생사회에 어떤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연세대학교 제1회 여성제 <길들여지지 않는 자신감>은 행사 기획안을 통해 “신입생들에게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여성문제를 보여주고, 여성문제는 바로 우리의 일상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현대 사회의 일상인 ‘문화’의 축제, 문화제의 형식”을 차용함을 밝혔다. 또한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학내 여성주의적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장으로서 기능하기를 바라고 있다. 제 1회 여성제의 주최단체는 엄밀히 말하자면 총여학생회가 아닌 여성자치연합 주최이다. 당시, 총여학생회가 뽑히지 않았고 “기존의 경직된 ‘총여학생회’가 아닌, 보다 여성주의적 조직으로서의 자치연합”을 구성하고자 학내 여성주의 자치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든 단체이다.(주2)
남녀공학이지만 실생활에 숨겨져 있는 가부장제 때문에 누군가는 공적인 자리에 등장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대상화된다. 성폭력 자치규약과 같은 공통의 약속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의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여성주의를 공론화하고 알아갈 수 있는 장으로서 기능했다.
총여학생회 주관 및 주최 문화제 연표
1997 제 1회 여성제 <길들여지지 않는 자신감>
1998 공포와 섹슈얼리티 야외 영화제
여대생 실업문화제 <살아야한다-비상구,돌파구를 찾아서>
1999 제 2회 여성제< 女友야, 女友야, 어디있니?>
2000 제 3회 여성제 <餘聲, 女聲,女性(여성,여성,여성)>
2001 제 4회 여성제 <풍류여인; 女友야 나오너라 다같이 놀자>
2002 제 4회 월경페스티벌 <경칠년들>
* <월경페스티발>은 고려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 이화여대 연합 여성 문화기획 단체 ‘불턱’에 주최 및 주관한 연합행사로, 제 4회는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개최했다. 이 외의 회차는 타 캠퍼스 혹은 서울 곳곳의 여러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2003 제 6회 여성제 <어느 멋진날, 그러나 멋지지 않은 이야기>
제 1회 섹슈얼리티 문화제 <여성,욕망,말하다>
2004 제 2회 섹슈얼리티 문화제 <Face! Women’s Desire-여성,가부장제와 이성애중심주의에 반기를 들다>
제 7회 여성제 <소녀유람: 웃는 여성, 흐르고 넘치다>
2005 섹슈얼리티 영화제 <여성의 섹슈얼리티, 그 촘촘한 억압과 모호한 해방에 관하여>
제 8회 여성제 <라푼젤, 성을 탈출하다: 일상을 뒤집은 여성의 주체적인 삶 살기>
2006 제 1회 반성폭력 문화제<성폭력, 소통의 힘으로 그 기억을 마주하다>
제 9회 여성제 <여성, 욕망에 입을 그리다?
2007 레즈비언 문화제 <나는 레즈비언 문화제>
2008 제 10회 여성제 <feminism is for every body:모두를 위한 여성주의>
2009 제 11회 여성제 <나의 성은 X다>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탈이성애중심주의 문화제 <퀴어의 움직이는 성>
2011 제 1회 호락호락한 문화제
2012 3.8 여성의날 기념행사
제 2회 호락호락한 문화제 <불편한 진실>
2013 제 2회 반성폭력 문화제 <우리가 전하는, 사과>
2015 3.8 여성의날 기념행사 <진정한 나로 살아남기: 그게 나야>
2017 제1회 인권축제<Hello, World>
2018 제2회 인권축제<다시만난세계>
2019 제3회 인권축제<-ever!>
*<여성제, 섹슈얼리티 문화/영화제, 레즈비언 문화제,탈이성애중심주의 문화제, 호락호락한 문화제, 반성폭력 문화제, 3.8 여성의 날 기념행사>는 총여학생회 주최 및 학내 기획단 주관한 행사이다.
이 중 여성주의, 탈이성애주의를 잘 드러내는 문화제 몇 가지를 꼽아 그 내용을 소개하려한다.
2002년 제 4회 월경페스티발<경칠년들>
🎉 <영상제> 월경 Cf: 월경에 대한 유쾌한 상상을 하고자 cf를 상영.
🎉 <영상제> 넌 어떤 월경을 하니?: 장애 여성, 트랜스젠더, 원불교 교무의 다양한 월경이야기.
🎉 <퍼포먼스> 도깨비 굿: 여성의 월경혈이 묻은 속옷으로 악귀를 쫓았던 예전의 풍습 그대로 장애 여성의 월경에 대한 편견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한판 굿. 참여자 장차현실, 정은혜, 서울대 중앙동아리 마당패 탈.
🎉 <퍼포먼스> 트랜스젠더와 함께하는 보지 패션쇼: 참여자 서혜진, 하자센터 퍼포팀.
🎉 <간담회> 월경 모놀로그: 일상 속 월경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패널 김수진, 정강혜령, 정민정.
🎉 <워크샵> 월경체조: 여성의 몸에 좋은 체조를 관객과 함께.
출처: 제 8회 여성제 자료집 포스터,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카이브 여기모아>
2005년 제 8회 여성제 <라푼젤, 성을 탈출하다:일상을 뒤집는 여성의 주체적인 삶 살기>
🎉 <개막제> 라푼젤, 더 이상 참지 않다: 중도 앞 광장에서 라푼젤이 무너뜨린 성(조형물)을 전시하고, 자신의 소망을 색지에 써서 빨랫줄에 너는 등 축제 개최를 선언.
🎉 <이주 여성 지원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까페>: 11시~5시 학생회관 푸른샘에서 네팔 액세서리, 방글라데시 옷 액세서리, 이주 여성노동자 라디카의 비즈 공예품을 판매하여 수익금을 이주 여성 운동 단체에 기부.
🎉 <간담회> 이주 여성의 노동과 국제 결혼: 이주 여성 활동가 초청하여 간담회 진행.
🎉 <영화 상영>: 학생회관 앞 야외에서, 백양관 강당에서 이주여성노동과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영화 상영.
🎉 <네트워킹> 라푼젤 파티를 열다: 논지당에서 열린 여성들의 모임. ‘여성들의 모임’도 특정 성격으로 꼬리표가 달리기도 하고, 남녀가 섞인 모임 또한 밤늦은 술자리, 포르노그라피로 이루어지는 ‘남성의 모임’이 되어버리고마는 현실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만든 네트워킹 파티.
출처: 제 10회 여성제 자료집 포스터,<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카이브 여기모아>
2008년 제 10회 여성제
🎉 <영화 상영> : 30년 동안 투쟁하고 있는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우리들은 정의파’ 상영. 연세대 분회 조합원들과 함께 관람 후 영화 상영 뒤 감독과의 대화
🎉 <워크샵> 스윙, 스윙, 뜨거운 파티 : 여성주의 춤 테라피스트인 모모와 송이송이 주도하여 ‘남성성, 여성성’ 없이 몸을 움직이는 춤 강좌.
🎉 <전시> Feminism is For every 영희: 여성제 기간 삼일 내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 천막에서. 영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컨셉의 전시. 싸우고, 춤추고, 미희를 사랑하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 속의 영희를 보여준다.
🎉 <폐막식> 활활 타올라라, 성폭력의 기억: 금요일 오후 4시 30분.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에서.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공포와 트라우마를 불 속에 집어넣고 태워버리는 행사.
출처: 제11회 여성제 자료집 12쪽,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카이브 여기모아>
2009년 제 11회 여성제 <나의 성은 X다>
🎉 <영화 상영>: 트렌스젠더 다큐멘터리 상영
🎉 <워크숍>: 노천극장에서 움직임 워크숍. ‘여성적이다’,’남성적이다’라는 말 아래 행동에 제약 받는 것을 벗어나서 신나게 내가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 자리
🎉 <강연> 당신의 젠더를 의심하라: 연사 한채윤
그리고 이외에도 더 많은 축제 내용은 여기모아 양성평등센터 아카이빙 센터에서 볼 수 있다.
여성주의는 일상으로부터
백양로 위가 학생들의 목소리로 점철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학생들은 단순히 아카라카, 연고전, 대동제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문화제’의 형식을 빌렸다. 총여학생회와 여성제 기획단은 여러 행사를 기획해 학생들에게 일상 속 가부장제, 여성의 억압된 섹슈얼리티 해방, 성교육, 학내 여성노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단순히 지나치는 거리가 아니라, 그 공간에 머물러 자신들의 생활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
문화제라는 학내 여론(與論) 형성 방식이 꽤나 생경하고 고전적인 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24년의 우리에게 학내 여론은 에브리타임이라는 온라인 공간이 전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절은 온라인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 ‘문화제’일 수 있다.
그럼에도 꾸준히 백양로로 나와 여성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여성이 경험하는 모든 순간과 정동이 일상에서 생기는 문제이자, 일상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누군가가 명령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강한 응징으로만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서 새로이 만나는 관계맺음에서,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 문화에서 해결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백양로에 펼쳐질 제18회 여성제 인권축제. 만나볼 준비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