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제 아닌
자치질서로서의
학생사회 상상하기
편집자 야자수🌴
여성자치단체와 나눠쓰던 총여실,
강제철거되다
1998년, 제10대 총여학생회 <여/성/주/의>가 당선되었다. 이들은 학내 여성 소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총여학생회실(이하 총여실)을 개방해 봉사단체 ’애또래’, 여성주의 교지 ’두입술’, 생활도서관(이하 생도)과 함께 공간을 썼다. 총여실은 큰 공간 1개, 작은 공간 2개로 이루어져 있어 나눠 쓸 수 있었다. 애또래는 제6대 총여학생회부터 총여실의 작은 방을 사용하고 있었고, 두입술과 생도는 제10대 총여학생회부터 또 다른 작은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듬해 제11대 총여학생회 <여성창조> 당선 후, 총여실을 계속 ‘두입술’, ‘생도’와 함께 사용할 것인지 협의를 보기로 하였다.
논의의 과정 중, 완전히 합의가 되지 않은 채로 제11대 총여학생회는 총여실에 있던 ‘두입술’과 ‘생도’의 기물을 독단적으로 강제 철거 했다. 이에 대해 제10대 총여학생회와 학내 여성 의제 관련 소모임, 타 단과대 학생회장 등 많은 학생들이 제11대 총여학생회를 비판했다.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기물 철거를 한 사실뿐만 아니라, 당시 학내 여성자치단체가 쓸 수 있는 공간은 총여학생회실과 이과대 여학생회실 두 곳밖에 없는 것에 비해 수요는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공간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주1). 해당 사건에 대해 1999년 3월 2일 연세춘추는 “총여의 당당한 ‘상식 밖 행동’”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주2).
이에 관해 제11대 총여학생회는 제10대 총여와는 다른 기조를 가지고 있기에 임기 동안 존중 받아야 함을 주장하며 이 사건을 ‘여성자치단체에 대한 탄압’으로 몰고 가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주3). 이후 결국 제11대 총여학생회와 ‘두입술’과 ‘생도’는 서로의 합의 하에 경영원 여학생 휴게실로 집기를 옮겼다.
단순히 학생들을 대표하는 총여학생회가 아닌 ‘자치질서로 존재하는’ 총여학생회
해당 서술만 보면 분명 의아할 것이다. 학생회가 바뀌면 당연히 이전의 학생회와는 다른 기조로 집행을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왜 ‘두입술’과 ‘애또래’는 제11대 총여학생회와 공간 사용에 관해 그렇게까지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을까?
이 사건을 단순히 총여실을 둘러싼 자리싸움이 아닌, ‘학생 대표 기구를 어떤 성격으로 정의할 것인가’에 관한 대립으로 봐야 한다. 이들이 분노한 배경은 제 10대 총여학생회 출범 이전으로 거슬러 간다.
1997년 한 해 동안 총여학생회 선거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자리를 메꾸고자, 학내 여성의제를 다루는 소모임들(성정치위원회 ‘the other’, 법대 여학생회, 법대 성 연구모임 ‘동쪽’, 사회대, 이과대, 공대의 여성학 모임 등)이 모여 <여성자치연합 10대 총여학생회 건설 준비위원회>(이하 여성자치연합)를 설립했다. 여성자치연합은 ‘기존의 총여학생회가 여학우들을 대표한다고 할 만큼의 대표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 학생자치단체를 연합하고 조직화하여 자치질서로 존재하고자 한다는 설립배경을 밝혔다(주4).
“학생회는 학생운동을 전적으로 책임질 전위가 아니다. 그리고 학생운동은 어느 정파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모든 학우가 자신의 자발적인, 자신의 삶에 기반한 정치성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학생운동일 것이다.(44쪽)”
“왜 학우들의 권력이라는 것은 대의제를 통한 학생회라는 상위 기구로만 구현되는가? 우리는 권력을 다시 정의하는 데에부터 시작해야 한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위에서 아래로만 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권력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현재의 권력 구조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 권력 구조이며, 이렇게 하향식의 구조 속에서는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억압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새로운 권력 구조의 창출이란, 이러한 구도를 뛰어넘어, 새로운 형태의 ‘권력’-자발적인 권력, 타인을 배제하고 억압하지 않는 권력-을 사고해야 한다. 일상적인 학교 생활 속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부족함을 실제로 느끼고 있는 당사자가 나가서 싸울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야 한다.(46쪽)”
- 10대 총여 건준위 여성자치연합, <이것은 선거 정책 자료집이 아닙니다: 너의 일상에 침을 뱉어라> 中
이후 제10대 총여학생회도 ‘학생을 대표한다’는 대의제 민주주의 허상을 비판하고, 자치질서 활성화를 목표로 학내 여성자치단체 간의 연대와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실시한 정책이 예산자치제와 총여실 공간 개방이다. 먼저 예산자치제는 총여가 자치단체의 활동에 따라 예산을 분배하는 것이 아닌, 총여학생회의 예산 중 일부를 자치단체에 주어서 공동기금형식으로 마련해 놓고 자치단체들끼리 독자적으로 필요에 따라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는 재정을 독립적으로 운용하여 총여학생회 중앙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자치단체의 원만한 운영을 돕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총여실을 학내 여성자치단체가 자유로이 쓸 수 있도록 개방했다. ‘두입술’은 총여 기관지 <연세여성>을 독립시켜 만든 여성 전문 편집위원회이다. 총여 산하 조직이었다가, 학생자치단체로 성격이 변화한 것이다. 때문에 예산과 공간 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교지 3천 부를 발행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고 한다(주5). 학내 곳곳 여러 학생자치단체의 유기적인 연결에 대해 높아지는 관심 속에, 왜 당시 많은 학생이 기물철거사건에 반발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학생 사회 대표 기구로 선출된 총학생회가 충분히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계속되는 비대위 구성과 아슬아슬한 투표율. 그리고 뽑힌다고 한들, 총학생회를 일상 속에서 ‘감각’하는 학생들은 턱없이 부족하다. 학생회는 학생들을 대표한다는 명목 하에 종종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일꾼’으로서 여겨진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희생’이 아닐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묻고싶다. ‘학생회’라는 기구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표시할 수 있는 구조는 왜 없었던 것일까. 물론 개인의 관심 부족이 문제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제10대 총여학생회가 주장한 것처럼 ‘대의제’에 너무 기댄 나머지, 정작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 채로 누군가 설정해 준 의제에 따라 학교 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1997년도 결성된 여성자치연합도 비슷한 이유로, 많은 학생이 일상 정치와 멀어지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당시 캠퍼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여성자치단체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와중에, 여성자치연합과 제10대 총여학생회는 여러 단체의 목소리를 조직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대의제가 아닌 자치질서로 총여학생회를 구성하고자 하였다. (끝)